한국다문화연구원 다문화 소통의 마당을 엽니다.

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 > 희망노트

희망노트

행복, 지금 이대로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배유나 작성일12-11-07 10:47 조회21,501회 댓글0건

본문

행복, 지금 이대로만…

 

 

배유나

 

 

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온 배유나입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 왔습니다. 전 정말 한국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옆집 사는 친구가 한국 사람이랑 결혼했는데, 신랑이 젊고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또, 신혼부부가 함께 자전거 타는 것을 보니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국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었고, 제 의지대로 결정해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고, 모두 말렸습니다. 특히 엄마는 가족이랑 떨어져 어떻게 살 거냐고 극구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마음씨가 따뜻해 보이는 남편에게 큰 믿음이 갔고, 그렇게 어렵게 결혼식을 올려서 저는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오니, 베트남과 날씨도 많이 다르고 사람들도, 먹는 음식도 말도 모두 낯설어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한국인과 무턱대고 결혼식을 올린 저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저 또한 철없이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한국말을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고, 입덧도 심해 친구 한명 없는 이곳에서 외로워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과 생활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기를 낳고 일주일만에 돌아온 집은 마치 쓰레기장처럼 어질러져 있었고 아이를 눕히고 방을 치우면서 ‘미역국’ 끓여줄 사람조차 없는 현실에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도 생기고, 한국어도 조금씩 알아듣게 되니 ‘지금부터는 내 인생도 조금씩 나아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습니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지독하게 한국어를 배운 덕분에 일자리를 얻어 드디어 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남편은 저와 아이들을 두고 직장을 당진으로 옮겨서 한 달에 한번 집에 온답니다. 혼자 직장을 다니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떤 때는 다 포기하고 싶고 혼자 멀리 떠나가고 싶었습니다.

 

집과 직장이 멀어서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바쁘게 뛰어가고 저녁에 퇴근 후에 또 바쁘게 뛰어오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다 재우고 나면 11시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부터 새벽 2시까지는 베트남어 번역으로 생활비를 보충하려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토요일은 대학으로 공부하러 다니고, 일요일도 아이들을 데리고 설문 조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이러다보니 제 몸도 파김치가 되어 거의 녹초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엄마를 만나 저희 아이들은 365일 약을 달고 살다시피 하고, 아파서 잠이 든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로서는 한없이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못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쁘다보니 아침을 거르는 게 일쑤고 아침을 거의 안 먹어서 그런지 위궤양이 자주 일어납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버스에 내려서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위궤양 때문에 배가 너무 아파서 걸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이집을 눈앞에 두고 걷지 못해서 끊임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날은 작은애가 다리를 다쳐서 걸어갈 수 없어 나는 아픈 상태로 뒤에 한명 업고 한명은 손을 잡고 집으로 가다가 결국 가까운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가 내장이 꼬여서 링거를 맞아야 금방 나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링거를 못 맞고 집으로 왔는데, 결국 밤에 119응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혼자 아이를 키운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일을 하면서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보이고 느끼는 것을 제 멋대로 해석했습니다. 한국 땅을 밟은 많은 베트남 친구들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감정만 갖고 이곳의 삶을 포기하고 도망치듯 고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선택한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한국어를 남들보다 더 지독하게 배웠습니다. 한국인의 마음과 문화를 많이 배워서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도 이해시키며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더 귀한 존재로 살겠노라고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가 선택한 남편이 좋고, 제가 좋아서 온 한국 땅입니다. 물론 베트남과는 많이 달라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자상하게 잘 챙겨주는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지금처럼만, 딱 !!!! 이만큼만 계속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어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