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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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즈미야마 시가꼬 작성일14-07-01 09:25 조회22,478회 댓글0건본문
월드컵의 추억
세종시 이즈미야마시가꼬
지금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개최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축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도 신경이 쓰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출전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눈은 나도 모르게 TV로 가고 귀는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까지 자연스레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결과는 듣고 싶지 않은 내용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응원하고 거기서 힘을 얻고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각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한일관계처럼 한국도 일본도 답답한 마음만 남기고 16강에 못 갔습니다.
그렇게 되면 생각이 나는 것이 하나입니다.
그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입니다. 대회명칭만이라도 하나입니다.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얘기하면 끝이 없을 만큼 여러 얘기가 나올 겁니다. 저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996년 초(아니면 1995년 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그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었습니다. TV에서 2002년도 월드컵 개최지는 한국과 일본, 즉 한일월드컵이라고 결정 되었던 겁니다. TV에서 여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전혀 못 들었던 저는 오직 한일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아주 기뻤다는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 결혼을 우리 조상님들이 기뻐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서 모든 것이 장미 빛깔이었습니다.
드디어 2002년도의 월드컵이 시작했습니다.
16강에 올라간 두 나라를 보면서 이렇게 흥분할 수 있나 싶은 정도로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인데 한국대표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마치 지진이나 산사태가 일어난 것 같은 소리가 나서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특히 우리 집 위층에 사시는 아저씨는 축구 경기를 할 때마다 열정적인 응원을 하기 때문에 보통 소음이 아니었는데 월드컵 16강전, 8강전, 4강전은 인간이 낸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단한 소음이었습니다.
2002년은 일본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일본열도가 유니폼색을 따라 새파래진 상태로 응원을 했을 겁니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못 만난 우리 친정아버지와의 한 통의 전화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우리 결혼을 반대하셨던 입장이라서 항상 전화로 통화 할 때도 그렇게 반가운 기색을 하나도 안 보여주셨는데 그 날의 아버지는 흥분한 목소리였습니다.
“いや~、韓国はすごいな~。びっくりしたよ。父さんも、あの応援の中にいたいよ。”
(야~, 한국은 대단하네~. 놀랐어~, 나도 저 응원석에 있고 싶구나~)
저도 놀랐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하나된 모습에 아버지의 마음도 흔들리셨고 감동을 받았다고도 하셨습니다.
일본은 16강에서 그쳤지만 한국의 기세는 4강까지 이어지고 정말 재밌고 감동적이고 잊을 수가 없는 2002년도였습니다.
매년 5, 6월이 되면 월드컵 특집이라고 하면서 재방송이 TV에 나갑니다. 우리 남편도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보고 있습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본 덕에 어디서 누가 이런 식으로 해서 어시스트 하고 슛 하고… 등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2002년 1월생입니다. 본인도 2002년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축구도 아주 좋아합니다.
다음 4년 후에는 월드컵이 또 있습니다. 그 때 또 저는 친정아버지 생각이 날 겁니다. 그래서 월드컵이 좋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이겼으면 더 좋습니다만 세계에서 축구로 축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행복합니다. 어려운 나라가 선진국을 이기면 시원상쾌하고 거기에는 차별도 열등감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포츠가 좋은가 봅니다.
지금도 혹시나 우리 친정아버지가 [붉은 악마 한국 응원석]에서 응원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저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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