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비친 그리운 할머니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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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소연 작성일13-09-09 11:33 조회23,1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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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비친 그리운 할머니 얼굴
  
 
                                                                                                                                  최소연(홍성다문화가족지원센터)<?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추석이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하고 달력을 보니 3주도 체 안 남았다. 깜깜한 밤하늘을 보니 아직 동그랗게 채워지지 않은 달빛은 참 오묘하다. 그 달을 보고 있자니 왠지 쓸쓸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 것이 한국으로 오기 전 중국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추석을 보내고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일들이 문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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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举头望明月，
低头思故乡。
침상 머리에 밝은 달빛
땅 위에 내린 서리인가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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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인 이백(李白)의 정야사 (靜夜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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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니 정야사라는 시가 떠오른다. 어쩜 이리 지금 내 맘과 꼭 같은 시를 쓰셨을까. 비록 지금은 달빛이 어두운 하늘이지만, 하늘 한 번 쳐다 보고나니 고향 생각과 가족들 생각에 몹시 서러워진다.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와 자랐다. 중국사람 대부분이 그러하듯 우리 부모님 또한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내 어린 시절 거의 대부분을 할머니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텅 빈 집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심심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언제 오실까 하는 생각에 괜히 심통이 나서 할머니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하고, 할머니가 들어줄 수 없는 어려운 놀이를 함께 하자고 말해놓고 할머니가 못 따라주면 심통을 부리고 울기도 했다. 
몇 년을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을까? 서서히 할머니도 나도 서로에게 미운 정, 고운정이 들어 어느새 우린 땔 수 없는 다른 가족들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이어진 사이가 되어버렸다. 유년 시절이 지나고 성인이 되었을 때도 할머니와 내 사이는 사랑과 정으로 맺어진 사이로 남아있었다. 할머니의 주름도, 할머니의 냄새도, 할머니의 웃음소리도, 할머니의 머리카락도 그냥 다 좋았다. 다 큰 아가씨가 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내 등을 어루만져 주시는 거친 손이 너무 좋았다. 가끔은 나를 키워주시느라 이렇게 빨리 늙어버리신 걸까 안쓰러운 마음에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는 내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신 듯 내 손을 끌어당겨 꼭 잡아주시며 ‘우리 아기 언제 이렇게 예쁜 처자가 됐을꼬.’ 하시면서 눈가가 촉촉이 젖어 나를 쳐다보시곤 했다. 나도 행여 눈물이 나올까봐 더 크게 웃으며 ‘할머니가 이렇게 예쁘게 키워 준거잖아. 할머니랑 평생 같이 살래.’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할머니를 두고 내가 한국으로 오게 될 줄이야. 할머니도 나도 서로 먼 나라에서 떨어져 살게 되리란 것을 생각이나 한 적이 있을까? 한국으로 가야지 결심을 하고 들뜬 마음과 기대에 한국에 무엇을 가져갈까. 한국에 가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어떤 곳에서 살게 될까. 시부모님은 좋은 분일까.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나를 걱정하는 가족, 나를 염려해주는 친구들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앞으로 나에게 펼쳐진 즐거운 날들만 상상하면서 가족과 친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한국으로 오기 며칠 전 친구들을 만나고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인데 아직 할머니가 주무시지 않는 것 같아 할머니 방문을 여니 할머니가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에서 울고 계셨다. 무슨 일이 있나하고 깜짝 놀라 할머니에게 다가가니 할머니는 나를 꼭 안아주시며 ‘우리 아기 가고 나면 나는 어찌 살까’ 하시며 우셨다. 할머니 우는 모습에 나도 정말 아기처럼 할머니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한국에 갈 생각에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들, 나를 그리워할 가족들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얼마나 이기적이었을지 내가 갑자기 너무 한심스러웠다. 한참을 할머니와 울고 난 후 그날은 할머니 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한국으로 오는 날 공항에 배웅 나온 할머니 모습을 10년이 지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할머니가 언제 저렇게 초췌하게 늙어버리신 걸까. 나 때문에 주름도 더 생기고 살도 저렇게 빠진 걸까.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서 할머니를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엄마, 아빠와 서둘러 인사를 하고 할머니를 안아보는데 어쩜 이렇게 작아지셨는지. 할머니 구부정한 작은 어깨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할머니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전화도 자주 하고, 사진도 많이 보내드릴게요. 할머니도 저 보러 꼭 한국에 오세요.’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슬프게 소리 내 엉엉 울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친정에 몇 번이나 갔을까? 두 번? 세 번? 할머니와 했던 약속은 지키지도 못하고 나는 어느 세 한국 생활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상상 속에 그리던 그런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시작한 신혼은 너무 힘들었다. 시부모님 눈치에 이른 아침부터 식사를 준비하고 취나물 하우스에 나가서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앉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대학생들 하숙을 하는 시부모님을 도와 하숙생들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해야 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한국으로 온 것인가? 스무 살 꽃다운 내 얼굴은 어디로 가버리고 거울을 보니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시골 아줌마 한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더욱 생각나는 가족들. 그 중에서도 나를 끔찍이 사랑하셨던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건 아닐까. 힘든 고민을 할 때마다 할머니를 사진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내가 할머니랑 살기 시작했던 딱 그 나이,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할머니랑 살았던 그 때 내 어린 시절 얼마나 나를 두고 일을 나간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원망스러웠는지 잘 알고 있기에 함부로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힘든 일을 마치고 씻고 잠자리에 들 때쯤 내 옆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는 아들과 딸을 볼 때면 그 때 할머니가 나를 바라봤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할머니 마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기에 할머니가 더 그립고, 내 아이들이 더 애처롭다. 
더운 여름이 다 지나고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다. 하늘이 파랗게 높아지고 집 앞 논들에 심어 둔 벼가 노랗게 변한 걸 보니 제법 가을이 코앞에 와있는 느낌이다. 곧 추석도 되겠지! 보름달이 보려면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하지만 추석이 되면 중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기분이 편안해진다. 
내 고향 중국의 추석은 한국과는 조금 다른 명절이다. 보름달처럼 동글동글한 음식을 나누어먹고, 가족과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월병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행복을 기원해준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나는 그런 추석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추석 며칠 전부터 친척들 맞이할 음식 준비, 집안 청소, 추석에도 밥하고, 설거지하고, 아침 일찍부터 제사를 올리고 다시 그 일들을 반복하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만하고 나니 추석이 지나가버렸다. 추석에 차례를 지낸 적이 없던 나는 1년에 몇 번이나 제사가 있는데 왜 추석에도 제사를 지내야 하는 걸까 처음엔 너무 이해도 안 되고 짜증만 나고 힘만 들었다. 결혼하기 전처럼 가족들이 모여 앉아 서로에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한국에 온 후로 추석은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날이 아닌, 많은 가족들 안에서 나만 죽어라 힘들게 일해야 하는 서글픈 날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에 중국에서 온 친척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내가 돌 무렵에 찍은 사진을 가져다 주셨다. 내가 한국으로 온 후, 할머니께서 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셨던 사진인데 이제 나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아가씨 일 때 사진 한 장 챙겨오지 못했다.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이 사진을 보내주셨을까? 사진을 보고 있으니 내 딸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꼬마였구나. 귀엽기도 하다. 내 추억 한 편과 할머니의 그리움이 그대로 묻어 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난다. 할머니의 마음도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하니 더 서럽게 눈물이 난다. 
이 번 추석에 환한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구름 없이 맑은 날 환하게 뜬 보름달을 중국에 계신 할머니도, 한국에 있는 나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보름달에서 그리운 할머니를 볼 것이고, 할머니는 보름달에서 내 얼굴을 떠올리시겠지!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아이들을 양 손에 잡고 꼭 할머니를 보러가야겠다. 나를 꼭 닮은 딸을 보면 할머니는 어떤 느낌이 드실까? 오늘따라 너무나 혼자 쓸쓸히 계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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