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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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소연 작성일14-05-07 11:39 조회22,322회 댓글0건본문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
최소연(충남 홍성)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낯선 한국으로 온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나 하고 느껴질 만큼,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살아온 내 삶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난다. 문화적 차이와 언어 소통 문제를 극복하려 눈물 나게 노력했던 처음 몇 년과 그 노력을 발판으로 내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들을 마련하고자 배움의 기회를 얻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발견해내며 나를 성장시켰던 모든 과정과 그 과정 안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의 고마움이 새삼 어제 일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인지.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찾아온 낯선 질문에 답답해하고 의문을 갖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한국으로 온 내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이 자리가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인지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었고 그 의심과 물음에 적절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또 무단히도 고민하고 노력했었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난 지금에야 다시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그 고민과 노력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지금 난 여느 결혼이주여성들보다 더 활발하게 내 일을 하고 있으며, 내가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고민의 시기에 멈춰 현실 그대로가 그냥 내 삶이려니 받아들였다면 과연 지금처럼 성취감을 느끼는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아닌 초라하기까지 했던 내가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런 물음에 답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 것 같다는 확신이다. 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으로 했던 일은 공부이다. 물론 시작은 얼른 한글을 배워서 더 이상 의사소통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나를 닮은 아들과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함이었다. 공부를 하고 또 다시 욕심을 부려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 특기를 살려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얻게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 살림을 돌보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학업과 일을 동시에 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보니 다시 내 자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제 나를 위한 공부나 일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을까 생각하고 찾아보게 되었다. 힘들게 공부하고 힘들게 일했지만 분명 그 공부와 일이 내 노력만으로 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참 한글이 서툰 나를 위해 대신 시험 요점정리를 도와주고 함께 공부해준 분들도 있었고, 내 특기를 알아차려주고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고마운 분들도 있었다. 몇 년을 그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다보니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내가 이젠 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연한 이 생각과 다짐이 내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봉사활동으로 인해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 된 생각과 편견이 바뀌고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처음에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내가 했던 봉사는 별 계획 없이 닥치는 데로였다. 주로 청소를 하거나 반찬을 만들거나 하는 등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봉사활동이 많았다. 그런 봉사활동을 얼마간 하다 보니 내가 가진 특기와 특별한 상황을 살려 봉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점과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특이사항으로 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이 분명 있을 것이라 적당한 봉사활동을 찾고 있을 때였다. 마침 작년 3월 홍성경찰서에서 창단한 하모니외국인치안봉사단의 단장으로 뽑히는 영광을 얻게 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 여성들과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모니외국인치안봉사단에서 하는 활동은 쉽지만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이었다. 처음엔 학교주변에서 교통 봉사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학교주변 환경정리와 유쾌한 학교 환경을 위한 갖가지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고, 졸업식 기간에는 건전한 졸업식 문화를 이끌기 위해 강압적인 졸업식 뒤풀이 예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활동과 캠페인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선뜻 하려하지도 않는 일이기에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 봉사를 함으로써 지역사회의 건전성에 이바지할 수 있고,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들이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언어문제로 불편하지 않도록 통역을 해주고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 결과 다른 때보다 필기시험 합격률이 높아 필기시험에 합격한 여성들도 도움을 줄 수 있었던 나도 참 흐뭇했었다. 작년 가을쯤에는 충남도청에서 열린 의료봉사활동에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봉사활동 외에 자기 나라의 다양한 문화체험을 참가자들과 함께 해볼 수 있도록 준비하며 힘들었지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하모니외국인치안봉사단의 단원이자 단장으로 참여하면서 뜻 깊었던 일화를 몇 가지 떠올려보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달 우리 하모니외국인치안봉사단은 <제95주년 3·1절 기념 만세운동 재현 및 걷기행사>에 참가해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보는 계기를 마련했었다. 비록 봉사단의 이름은 <하모니외국인>이지만 벌써 대부분 이주여성들이 한국 국적을 획득했고, 나머지 여성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중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서 행사의 취지를 더 뜻 깊게 만들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인가 우리는 홍성사회복지관 내 올리브 재가 노인 종합 지원센터에서 보호 중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미용 및 목욕봉사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고 보호를 받고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미용과 목욕봉사를 진행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비록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었지만 우리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고마움을 표현하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함께 살고 있는 시부모님과 머나먼 타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며 애잔한 무언가를 느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뜻 깊은 행사에 동참할 수 있어서 기뻤고, 봉사활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단원들 모두 무언가 마음 가득 차오르는 것을 말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이런 활동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봉사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행사로 계획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작년 겨울 김장철을 맞아 홍성읍에 있는 한 정신요양원에서 김장하기 봉사활동을 펼쳤다. 시설의 환자들과 직원들이 1년 동안 먹을 배추 3천포기 김장하기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외국에서 온 여성들로 구성된 우리 하모니외국인치안봉사단은 익숙하지 않음에도 더 깊은 뜻을 갖고 행사에 참여했었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왔었던 사람들이라면 김장하기 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좀 힘들고 말겠지 하고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배추를 본 것도 처음이라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는 것처럼 생소했고, 김치를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고된 작업에 참여하면서 매일 먹는 반찬 중 하나인 김치가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더 힘을 내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1년 동안 드실 김치라고 생각하니 한 포기 한 포기 더 정성을 쏟아내야 했었다. 아직 한국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단원들도 있고, 그 생활에 적응하랴 가족들과 생활하랴 여러 가지 바쁜 와중에도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뜻 깊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활동해준 단원들이 정말 고마웠다. 그 날은 때마침 눈이 내린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는 내색 없이 끝까지 김장하기를 마쳐준 단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해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역에 애착심을 가져보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지역 내 대표 등산로 자연정화 활동을 가졌다. 지역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오르내리는 등산로의 환경을 깨끗하게 만듦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봉사활동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겨울 동안 등산로 곳곳에 쌓여 있던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만으로도 쾌적한 환경이 된 것 같아서 활동하는 내내 마음이 시원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매월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벌써 1년이 지났다고 하니 그 시간만큼 마음 안에 쌓인 뿌듯한 무언가가 괜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아 좋다. 처음에는 내가 왜 한국에 왔을까 고민했었는데 하나씩 부딪쳐보고 느껴보면서 점점 한국에 내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뭐든 해야지 하는 욕심에서 시작했던 도전들이 이제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자 의미를 마련해주는 소중한 의미가 되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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