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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밥꽃이 하얗게 피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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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정자 작성일13-02-18 11:21 조회19,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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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5pt;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팝나무 밥꽃이 하얗게 피는 날</SPAN></P>
<P style="TEXT-ALIGN: center"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5pt; FONT-WEIGHT: bold;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SPAN>&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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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팝나무의 밥꽃이 하얗게 핀 속에서는 얼마 전 세상 떠난 그 녀의 남편 얼굴이 보인다고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명희(가명)씨는 2007년 9월 4일에 한국의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시집 온 중국결혼이주여성이다. 처음말도 통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낯선 이 땅에서 힘든 일이 정말 많았다고 한다. 몸이 안 좋은 남편대신 농사일을 도맡아하며 주말에도 놀지 않고 일하면서 고추씨와 땅콩 씨를 심으며 허리 한번 못 펴고 일만 했는데 고추를 따고, 땅콩을 캐면서 이곳에서 왜 힘들게 일만해야 하는지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고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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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그가 중국에서 생각한 한국에서의 삶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남편은 농사지은 농작물을 팔러 나가면 밤 2시가 돼서야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미워도 사랑하는 남편이니까 술 많이 마시면 건강이 나빠진다고 말을 많이 해봤지만 남편은 잔소리로 생각하여 기분이 나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모습을 보면 슬픈 마음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SPAN></P>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럴 때 시부모님이 도와주시면 좋은데 외국에서 시집 온 며느리들이 집을 많이 나가고 돈을 주면 친정에 다 보낸다는 소문을 들어서 남편더러 아내에게 돈 주지 말라고 돈 주면 도망간다고 말해서 정말 매일 매일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부모님들도 그를 못 믿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먼 곳에서 온 며느리한테 상처를 주어서 많이 속상했다고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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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이후에 주공임대 아파트에서 98세가 되신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 되었는데 그래도 시할머니가 며느리의 아픈 마음을 많이 헤아려 주시는 다정한 분이어서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몇 개월 전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자궁암이라고 해서 수술을 했다고 한다. 자궁을 몽땅 드러내는 큰 수술이어서 남편과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머나먼 한국 땅으로 시집을 와서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남편이 “여보 고마워요.”라고 말을 하면 아픈 마음이 가시고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하루하루 너무 힘들지만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그래도 반겨주는 시할머니와 남편이 있어서 들 외로웠다고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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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하지만 한국에 온지 이제 5년차, 회사에 다니면서 시골의 농사일도 하며 힘들게 살았는데 지난 더운 여름날, 갑자기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는 바람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남편이 돈을 벌수가 없어서 혼자 부단히 노력해서 힘들게 살았지만 그래도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어 의지가 되었는데, 용기를 못 주 실 망정 또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이제 그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고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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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체; FONT-SIZE: 12pt; mso-ascii-font-family: 굴림체; mso-hansi-font-family: 굴림체">작년엔 98세 되신 시할머니마저 그의 곁을 떠나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아버님과 어머님께서도 이젠 며느리더러 남편도 없으니 이젠 시댁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울면서 남편이 있을 땐 가족이고 남편이 없으면 가족이 아니냐고 하며 시어머님께 용돈도 드리면서 시집 온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임대아파트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계속 이곳에 살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살아있을 때 그렇게 밉던 남편이 이젠 너무 그립고 꿈에 나타나면 남편은 할머니와 함께 좋은 곳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저녁이 되면 이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 너무 힘들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교회를 다니면서 한국 사람으로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한국국적을 신청해 놓았는데 한국국적이 나오면 떳떳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며 열심히 살고 싶다고 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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